Yun Hyon-seok
Yun Hyon-seok is a Korean artist. No entries yet on the charts, music show wins or karaoke charts gayo.wiki tracks.
1Overview
Yun Hyon-seok (Korean: 윤현석; Hanja: 尹賢碩; August 7, 1984 – April 26, 2003) was a South Korean LGBT poet, writer, and activist. He wrote under the pen names Yuk Wu-dang (육우당, 六友堂, home of six friends) and Seolheon (설헌; 雪軒), and was also known by his nickname Midong (미동; 美童, beautiful boy) or Donghwa (동화; 童花, Boy flower).
Source: Wikipedia ‘Yun Hyon-seok’ · CC BY-SA 4.0
2ControversiesWikipedia text
논란과 의혹 · 평가와 비판 — show the Korean Wikipedia text (revision 2026-08-26)
편견과 차별에 대한 고통
육우당은 생전 겉으로 자신이 당하는 차별에 대해 드러내거나 표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성적소수자였고 자신을 옭매는 차별의 현실을 견뎌내기 어려웠다.[1] '누구보다 활동적이고 유쾌했지만 게시판에 실린 과거 그의 글에는 동성애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차별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잘 드러나 있다.[2]'는 평도 있다.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 활동하던 동료들에 의하면 그는 평소 밝고 명랑한 소년이었다 한다.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 정욜은 후일 회상에서 "찰랑거리는 귀걸이와 화장기어린 얼굴, 곱슬머리에 작은 체구. 그리고 주변 분위기를 유쾌하게 주도하던 그의 밝은 표정이었다. 그는 그렇게 우리와 처음 만났다[3]"고 회고하기도 했다.
정욜은 "그가 지난해 자의로 커밍아웃 한 뒤 많이 힘들어 고등학교를 그만뒀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4] 학교에 자신의 정체성이 알려진 뒤 자퇴할 수밖에 없었고, 그 뒤 자리를 잡기 힘들어 많은 고민을 해왔었다.[5]
레즈비언인 박수진은 "그가 어떤 마음으로 자살을 '선택'했을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면서 "동성애자들 중에 한두 번쯤 자살 시도 안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에는 주위에 의논할 사람도 하나 없는데다 동성애자임이 알려질 경우 어떤 일을 당할지 몰라 공포에 짓눌리다 결국 자살을 시도하는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동성애를 비정상으로 취급하는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자들이 성적 지향을 자각한 뒤 자신을 혐오하거나 존재 자체를 부정하게 되는 구조 하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4] 박씨는 또 "동성애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동성애자임이 드러날 경우 따돌림을 견디다 못해 전학을 하거나 학교를 그만두는 사례도 허다하"며 "심지어 아웃팅(본인의 동의없이 동성애자임을 폭로하는 행위) 위협을 당해 돈까지 빼앗겨도 가족들에게조차 알리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전했다.[4]
그는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왜 범죄취급을 받아야 되느냐며 한탄했다. 또 그는 남들과 좋아하는 대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짐승, 악마 취급을 받는 것이 너무나도 서럽다고 거듭 역설하였다. 육우당은 생전 한 글에서 '솔직히 우리 나라에서 이반[6]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깨진 유리 조각이 널려 있는 살얼음판을 디디는 꼴이다. 커밍아웃하기 전에 숨 죽이고 다니느라 마음 고생이고, 모든 걸 다 숨겨야 하니까. 커밍아웃하고 나면 사실상 자살 행위에 가까울 정도이다.[2]'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생각, 성적 지향을 사실대로 밝히는 것이 왜 자살 비슷한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자결 원인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7] 육우당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편견과 차별에 시달려 왔다.[8] 경찰에 따르면 H씨는 이 단체 사무실 책상에 남긴 유서를 통해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이 나라가 싫고 이 세상이 싫다”며 “나같은 이들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동성애에 대한 차별 철폐에 애써달라”는 유서를 남겼다.[9] 그러나 그를 비판, 혐오하는 세력을 염려하여 그의 실명과 활동은 2010년대 이후에나 알려지기 시작했다. 2010년 4월 25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고 육우당 10주기 추모 기도회’가 열렸다. 임보라 목사는 “지금 어느 곳에선가 육우당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이 있지 않을까”라는 화두를 제기하기도 했다.[10]
육우당의 죽음에 대해 '동성애자들이 “하나님의 진노로 유황불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역겨운 저주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육우당 동지의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남긴 듯하다.[11]'는 시각도 있다. 그는 유서에서 “수많은 성적 소수자들을 낭떠러지로 내모는 것이 얼마나 잔인하고 반성경적이고 반인류적인지...”라며 대한민국의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대해 분노했다.[12] 그는 자신이 성소수자가 아니면 아닌 것이지, 그것이 성소수자를 정죄할 권리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역설했다. 그는 유서에서도 “죽은 뒤엔 거리낌없이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죠. 윤○○는 동성애자다 라구요”라며 스스로 아까운 목숨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털어놨다.[12] 이에 대해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고달픔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12]'라는 평도 있다. 인권·사회단체들은 윤씨의 죽음을 우리 사회의 편견과 차별이 가져온 '사회적 타살'로 규정하였다.
자살 사전준비 의혹
그는 일기에서 '남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잘 사는데, 남들 대학 다닐 때 나는 동인련에 있고, 마음 한구석이 텅 빈다'고 고백했다.[13] 죽기 전까지 육우당의 곪은 마음을 주위에선 알아차리지 못했다. 누구보다 동인련 활동에 애정을 보였기 때문이었다.[13] 그의 곁에는 4월 24일자로 작성된 여러 장의 유서와 사진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다고 한다. 윤 씨가 자살을 차분히 준비해 왔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4] 마음을 굳힌 듯 그는 차근차근 죽음을 준비했던 것으로 보인다.[2] 4월 하순에는 같이 활동하는 회원에게서 디지털 카메라를 빌렸다. 그 안에는 ‘육우당’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2] 그러나 그가 돌려준 디지털 카메라에는 사진이 한 장도 없었다. 이 회원은 “육우당은 실수로 사진이 모두 지워졌다고 말했지만, 마음 정리를 하려 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2] 그가 동인련 카메라에서 사진을 삭제한 것을 두고도 고의인가, 사전에 자살을 준비하기 위한 정리이다 등의 말이 있었다. 그는 4월 24일 날짜로 유서를 작성해두었다.
2003년 4월 28일 그가 다니던 성당 신부님이 집전한 장례 미사가 끝나고, 그는 한 줌 재로 돌아갔다. 동인련 정욜 대표는 “비관 자살이라고 말하지만, 그의 죽음은 동성애를 억압하는 우리 사회가 빚어낸 타살이다”라고 말했다.[2] 2003년 5월 3일 국내 인권단체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의 밤을 열었다.[2] 그러나 그의 죽음이 계획적인 사고가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그는 이미 죽기 며칠 후인 5월 초에 약속을 잡기도 했으며, 각종 행사 일정과 세미나 참여 등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도 한 점을 들어 사전에 준비한 것이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그는 유서에 '한복을 입고 죽고 싶었다'고 남겼다. 왜 이 옷을 입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다.[14] 그는 한복을 옆에 놓아둔 채 목을 맸다.[14]
사회적 타살설
육우당의 죽음은 사회적 폭력에 의한 타살이라는 시각이 있다. 인권연대 측은 “육우당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에 희생된 수많은 청소년 성소수자들 가운데 한 명”이라 하였다.[15] 동성애자들은 그의 최후에 대해 “한마디로 요약할 수는 없지만 충분히 이해된다”고 입을 모은다.[16] 성 소수자들은 육우당의 죽음을 자신의 이야기로 여겼다.[11] 남성동성애자인권운동모임인 ‘친구사이’의 전명안 대표는 “어려서부터 경험하는 동성애에 대한 혐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 끝끝내 이해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이라고 표현했다.[16] 숨막히는 이 사회의 ‘공기’가 동성애자들의 목을 조른다는 것이다.[16]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 장병권은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니라 사회적 편견과 차별 그리고 보수적이고 반인권적인 기독교계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하였다.[17] 동성애자들은 윤씨의 죽음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주장한다.[16] 일부 기독교의 독선과, 한국사회의 편견과 배타성, 폐쇄성이 그를 죽였다는 것이다.
그의 죽음은 소돔과 고모라와 관련 유황불 성명서 관련해 육우당이 그야말로 사회적 타살이라고 말할 계기를 기독교에서 제공을 한 셈이었다는 시각이 있다.[18] 2013년 5월 14일 한국여성민우회가 매월 진행하는 대중강좌 ‘다다익선’에 연사로 초청된 기독교 목사 임보라도 육우당의 죽음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지적하였다.[19]
동인련 활동가 지혜 역시 그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라 하였다. '그는 유언장에서 아비규환 같은 세상이 싫고, 강자도 약자도 없는 천국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이 사회에서 동성애자가 자살을 택하는 현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금 이순간에도 자신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세상에 지쳐 죽음을 택하는 성적소수자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성적지향에 관계없이 사랑할 기본적 권리조차 가지지 못하고, 가정붕괴의 원인, 에이즈의 주범, 더러운 변태로 몰려서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가족에게 버림받고, 정신병원에 끌려가야만 하는 것이 이 사회 동성애자들의 현실이다. 실제로 동성애자들의 우울증과 자살률은 평균에 비해 높은 편이다. 하지만, 이는 동성애자의 문제가 아니라, 동성애자를 냉대하고 혐오하는 사회의 문제이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다.[20]' 또, '"죽은 뒤엔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죠. ‘나는 동성애자다’라고요"라는 육우당 동지의 유서는 성소수자들의 사무친 마음을 보여 준다. 그는 ‘골방’ 속에 갇혀 있길 강요받는 성소수자들의 자화상이었다.[11]'는 시각도 있다.
또한 일부 기독교 진영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견해도 있다. "차별금지법 통과되면 청소년들은 동성애로 병들어 자살한다"는 피켓을 들이미는 일부 기독교 단체는 이 폭력과 비극의 책임이 동성애가 아닌 바로 당신들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21]"는 시각도 있다. 평론가 김겸은 '그를 죽인 것은 우리 안의 호모포비아이고, 편견이불러온 폭력과 억압이다.[22]'라고 봤다. '특히 청소년 동성애자들의 존재조차 부정하는 보수언론과 기독교 단체의 폭력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22]'는 것이다. 그는 '죽음으로 그 자신뿐만 아니라 동성애에 관한 한국 사회의 편견과 차별을 ‘커밍아웃’시킨 셈이다.[2]'는 시각도 있다.
동성애자인권연대의 고승우 사무국장은 "사람을 사랑 하라는 교리를 전파하는 기독교에서 사람을 죽이는 '유황불의 심판'을 언급했을 때 너무나 분노했다"고 밝혔다.[23]
또한 그의 죽음을 두고 "이 사회에서는 신앙의 이름 아래 수많은 폭력들이 저질러지고 있다. 동성애에 대한 한국 교회의 적대적 인식과 편견과 차별이 한 신앙인이기도 했던 그의 생애를 옥죄고 죽음으로 몰아갔다는 점에서, 고인의 죽음은 한국 교회에 의한 타살이다.[23]"는 시각도 있다.
학교 교육의 문제점
학교의 교육이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부추긴다는 점과 학교 수업에 동성애자들에 대한 도덕적, 윤리적 차별을 부추긴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육우당에 의하면 중학교, 고등학교의 도덕, 윤리, 생물 교과서 혹은 그 과목 시간에 동성애를 비윤리적이고 비정상적인 것처럼 왜곡하는 내용을 수업한다고 하였다. 이렇게 학교에서 교사들에 의해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주입받은 학생들이 사회로 나오면 당연히 동성애자를 차별하고 기피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의 유언장에는 ‘동성애자로 태어난 걸 후회하기도 했고, 이나라가 싫고 이 세상이 싫다’는 구절이 쓰여 있다.[22] 영화감독 겸 평론가 김겸은 '육우당의 자살 소식을 듣고 당시 (제도) 학교중심주의, 나이주의, 동성애 혐오증 등에 시달리며 간신히 버텨오던 내 안이 단번에 무너지는 듯했다.[24] 며 학교 교육이 성 소수자들을 차별하거나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언급하였다.
육우당은 학교의 도덕, 윤리, 생물 수업 시간에 동성애를 이상한 것처럼 묘사하는 수업 내용부터 사라져야 한다고 언급했다. 김겸은 동성애를 비윤리적이고 부도덕한 것으로 간주하는 학교 수업 내용 역시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학교교육은 동성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심어주기는커녕 비정상이라고 가르친다.[22] 이런 교육의 영향으로 청소년동성애자들은 성정체성을 긍정하기 전에 자신이 동성애자임에 괴로워하고 수치스러워한다.[22] 그는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학교의 수업 역시 육우당의 자살을 부추긴 것으로 봤다.
한기연의 동성애 문제 참여
육우당의 사건은 한기연이 기독교 안에서 동성애 문제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시발점이 되었다.[25] 1992년 출범한 한기연은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청소년보호법시행령 중 동성애 삭제권고결정에 반박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성명이 있은 후 육우당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기독교 내 성적 소수자 활동에 적극 동참하였다.[26] 그가 죽자 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회(약칭 한기연)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약칭 한기총)를 항의방문하였다. 한기연은 육우당의 죽음을 계기로 성 소수자 사안과 관련해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동성애에 대한 내부 논의를 더 적극적으로 진행하게 됐다.[27]
한기연 김바울 대표는 "윤현석씨의 죽음 이후 한기총 대응 활동을 전개해 오면서 동성애자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는 기독교인들이 증가했다"며 "넓어진 인식의 지반을 바탕으로 교계 내에서 동성애자 문제를 더욱 공론화하는 데 힘쓰겠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또 "우리의 이러한 활동이 지금도 신앙과 자신의 성적 정체성 사이에서 고통받고 있는 분들께 힘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28] 자신이 기독교 신자이기도 한 동성애자인권연대 정욜 대표 역시 "동성애자들이 정체성 문제로 고민하다 마지막으로 신앙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 교회가 이들을 오히려 밀어내고 있는 형국"이라며 교회의 변화를 촉구했다.[28]
기독교 단체의 갈등
2003년 4월부터 6월 무렵 그의 자살을 둘러싸고 기독교계 내에서 일부 단체간 갈등이 일기도 했다.[29] 당사자는 기독교계내 보수적 목소리를 대변해온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대학생들로 구성된 진보성향의 한국기독청년연합회(한기연)이었다.[29] 윤군의 죽음이 한기총의 반박성명과 직접적으로 관련있다는 게 한기연의 주장이었다.[29] 2003년 4월 초 국가인권위원회가 청소년 보호위원회에 ‘동성애 사이트’를 청소년유해매체 심의기준에서 삭제하도록 권고하자 한기총은 반박성명을 냈다. “동성애로 성문화가 타락했던 소돔과 고모라는 하나님의 진노로 유황불 심판으로 망했다. 동성애 삭제 권고 수용을 즉각 철회하라”는 내용. 이때까지는 별다른 갈등의 움직임은 없었다.[29] 그러나 같은달 26일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실에서 그가 목을 매 숨진채 발견되면서 상황이 반전했다.[29] 보수단체 측 모 목사는 육우당의 죽음을 두고 자기 스스로 선택한 일이니 우리가 사과할 이유가 없다고 입장표명했고, 분개한 성소수자 운동가들과 인권운동가들은 2003년 7월까지 수시로 항의방문했다. 그러나 모 목사 등은 우리가 살해한 것이 아닌데 왜 사과하느냐고 답했고, 모 목사들 및 일부 보수 기독교 신자들의 발언에 분개한 성소수자 운동가, 인권운동가들은 보수주의 기독교 인사와 갈등, 방송, 공청회 논쟁, 거리 논쟁, 실랑이, 몸싸움으로 이어졌다.
한기연과 동인련 회원 60여명은 2003년 6월 5일 한기총이 입주한 서울 종로 5가 기독교연합회관 앞에서 한기총의 사과를 촉구하며 윤군의 추모예배를 진행했다. 한기연은 한기총이 오는 19일까지 사과하지 않을 경우 ‘2차 행동’에 돌입할 계획이다. 6월 5일 당시 김바울(고려대 3년) 한기연 회장은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기총 등이 평소 보여온 동성애 관련 편향적 시각이 한 인간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밝혔다.[29] 이에 대해 한기총은 인권위에 대한 자신들의 반박성명은 특정 동성애 단체나 개인을 직접 공격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29] 한기총 관계자는 “우리의 반박성명이 윤군의 자살로 이어졌다는 것은 한기연측의 억지일 뿐”이라며 “기독교인이라면 인권문제에 앞서 먼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고 반박했다.[29] 육우당의 죽음을 놓고 한기총 등의 규탄성명이 육우당의 좌절감을 심화시켰다는 주장과 개인의 선택일 뿐이라는 반론이 맞서 한동안 논쟁꺼리가 되었다.
2003년 6월 22일 한기총은 그의 죽음에 사과하라는 다른 기독교단체의 요구를 거절했다. 4월말 자살한 그의 죽음과 관련, 기독청년단체들과 동성애자인권연대로부터 공식 사과를 요구받아온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길자연 목사, 아래 한기총)가 끝내 이들의 요구를 거절했다.[28] 이들 단체들은 지난 4월초 '동성애는 창조질서에 대한 도전이며 가정 붕괴와 에이즈 등을 초래한다'는 내용의 한기총 성명서가 가톨릭신자였던 그의 죽음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고 보고, 한기총의 사과를 요구해왔다. 5월 23일과 6월 9일 한기총 관계자와 2차례 만남을 갖고 유감이라도 표명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한기총을 이를 거부했다. 단체들은 또 동성애 관련 공개 토론회를 열어 상호이해를 높이자는 제안도 했지만, 한기총은 이마저도 '공개토론회를 할 만큼 한기총 내에 입장 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거절했다.[28] 일부 진보적 기독교단체와 인권단체들의 주장에 대해 익명의 기독교 인사는 자신들이 자살하라고 발언하지는 않았다며 반박했다.
6월 22일 한기연 등 4개 기독청년단체와 동성애자인권연대는 한기총이 자리한 종로5가 기독교연합회관 앞에서 항의집회를 열고, "동성애를 죄악으로 규정하는" 입장을 고수하며 유감 표명마저 거절한 한기총의 각성을 촉구했다.[28] 한기연과 동인련의 사과 요구에 한기총 김청 홍보국장은 "한기총이 발표한 성명서는 청소년유해매체 심의기준에서 '동성애'를 삭제토록 권고한 국가인권위를 대상으로 한 것이지, 동성애자를 정죄하려는 뜻은 없었다"면서도 공식 사과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김 국장은 또 "향후 동성애에 관한 신학적 정립과 선교대책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지만, 성명에서 밝힌 원론적 입장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해 동성애를 죄악으로 규정하는 입장에 변화가 없을 것임을 밝혔다.[28]
동인련, 한기연의 사과요구 거부
2003년 4월 26일부터 동성애자인권연대와 한국기독청년학생회총연맹 등은 한기총 일부 인사와 일부 기독교 인사, 단체들의 성명서가 육우당의 심경의 변화, 자살, 좌절 등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사과를 정식으로 요구하였다. 그러나 사과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6월 9일부터 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회와 동인련은 한기총 입주 건물 입구에서 시위를 벌이며 한기총 등의 육우당 자살 사건에 대한 사과와 애도를 요구하였다.[30] 그러나 이들의 요구는 거부되었고, 이들은 계속 한기총 건물 근처에서 한기총 및 일부 기독교 단체, 인사들의 발언 취소와 사과를 촉구하였다. 그러나 일부 기독교 단체 및 인사들도 맞불 방문을 하여 우리가 죽이지 않았으니 사과할 이유가 없다며 맞받아쳤다.
2003년 6월 23일 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회(회장 김바울)과 동성애자인권연대는 오전 11시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길자연)을 방문하고 동성애에 대한 한기총의 입장유보를 요청하는 한편, 지난 4월26일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실에서 자살한 윤 모군에 대한 애도를 요청했다. 이 방문에서 한기연, 동성애자인권연대와 한기총측과의 공식적인 면담은 아니었으나 이들 단체에서 한기총 사무실이 입주해 있는 한국기독교연합회관 앞 시위를 벌이고 게시판을 통해 항의한 것에 대해 특별한 답변이 없었던 한기총측이 관계자를 통해 단체 대표들과 대화를 하게 되었다.[31] 그러나 한기총 등은 사과를 거부하였다. 한기연과 동성애자인권연대의 주장은 윤 모군의 죽음이 한기총이 4월 발표한 '동성애 사이트 허용 철회 성명' 때문이라는 것과 한국기독교 대표기관인 한기총이 '동성애'를 정죄하고 있는 데 대한 입장을 철회해달라는 것으로 이에 대해 김청 홍보국장은 "동성애는 성경에 위배된다는 기본적인 입장을 유보할 수는 없다"고 한기총의 입장을 분명히 하는 한편, "윤 모군에 대한 사과를 이 자리에서 결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31]
6월 23일의 공개 면담에서 그의 죽음문제에 대해 한기연 김 대표는 "4월 발표한 한기총의 성명이 동성애자들을 입지를 축소시켰고 결국 윤 모군의 자살도 이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며 "윤 모군에 대한 사과를 촉구하며 유가족들에 대한 애도표현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청 홍보국장은 "문서를 통한 한기총의 공식적인 사과는 어려울 것"이라며 "유가족들에 대한 애도는 고려해 보겠다"고 답했다.[31] 동성애자인권연대 정욜은 "사회에서 소외를 받은 동성애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종교가 기독교인데 한국 기독교 대표기관에서 동성애자를 매도할 경우 이들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이에 김 홍보국장은 "틀린 것은 틀리다고 이야기하고 그들을 끌어 안을 수 있는 선교적인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고 답했다.[31] 한기총 성명의 타살여부에 대해서 정욜은 "(당시) 한기총의 성명에 동성애자들을 매도하는 표현이 있으며 이같은 교계의 시각이 동성애자들을 자살로 몰고가고 있다"며 "윤 모군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며 한기총에 이에 대한 책임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 홍보국장은 "4월 발표한 성명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소수의 인권에 집착하여 사회적 통념과 국민 대다수의 의견에 반하는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한 비판이지 동성애자들 전체를 매도하는 성명은 아니었다"며 "윤 모군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한기총의 성명으로 인해 윤 모군이 자살했다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라고 답변했다.[31] 협상은 결렬되었고 일부 기독교 단체들은 육우당의 죽음에 대한 사과를 거부했다.
6월 27일의 한기연 김바울 연합회장과 동인련 정욜 대표는 서울 종로에 있는 한기총 사무실을 방문하여 사과를 요구했다. 한기총 김청 홍보국장은 공개 사과가 어렵다면 고인의 부모에게 구두로라도 유감 표명을 해달라는 요구 역시 거절했다.[32] 김청 홍보국장은 "동성애는 성경에서 금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기총의 성명서가 동성애자를 일방적으로 매도하거나 정죄하는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또한 육우당의 자살 원인을 한기총의 성명서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동인련 정욜 대표는 "한기총 성명서를 보면 동성애자를 AIDS의 원흉이고 가정 파괴의 주범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매도가 아니라 그 이상이다”고 반박했다. 동성애자의 구원에 대해 고민한다고 하면서 그런 문구를 쓸 수 있느냐는 강한 항의도 있었다.[32] 반대로 일부 목사 및 신자들도 회관 근처에서 사과해야 할 이유가 없다며 피켓과 확성기를 소지하고 농성을 벌였다. 면담에서 김청 홍보국장은 "소수 인권도 중요하다. 그러나 기독교의 기본 내용을 버리며 이들을 끌어안는 것은 옳지 않다. 틀린 것은 틀렸다고 말해야 한다"며 한기총의 입장을 고수했다. 김바울 연합회장은 “사람이 죽어도 틀린 것은 틀렸으니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기독교 정신에 맞지 않는다. 예수가 세리나 창녀를 비난해 죽인 일이 있는가?"라며 강한 어조로 반박했다.[32] 한기총 측에서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선택의 자유가 있다. 죽음으로 갈 상황이 주어졌다고 해도 죽음을 택하는 것은 그 사람 책임이지 한기총만의 책임은 아니다.[32]"고 밝혔다. 같은 날 기독교회관의 동성애자인권연대와 한국기독청년학생회총연맹 항의방문단 맞은편에 와 있던 다른 목사들과 신자들은 우리가 죽이지 않았는데 왜 사과하느냐며 확성기와 피켓을 들고 반대시위를 하기도 했다.
7월 9일의 한기연, 동인련 등의 한기총 방문에서도 한기총 측은 사과가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회한기연은 6월 23일 한기총의 유감 표명을 촉구한 이후, 7월 9일 오후 4시 한기총 사무실을 다시 방문해, 40분 가량의 면담하였으나 긍정적인 대답을 얻지 못했다.[33] 7월 9일의 면담에서도 한기총 김청 홍보국장은 육우당 씨의 죽음이 한기총의 책임이라고 볼 수 없기에 공식적인 사과성명을 낼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한기총의 입장을 재확인한 한기연 및 정의평화를위한기독인연대,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 새민족교회 청년회, 동성애자인권연대 등은 유감을 표명하지 않는 것은 한기총이 동성애자의 죽음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무책임한 태도라고 반박했다.[33] 7월 9일에도 사과 반대를 주장하는 일부 목사들과 신도들도 근처에서 사과 불가 집회를 개최했다. 한기총 김청 홍보국장은 "개인적으로는 그 사람의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지만, 한기총의 이름으로 공식적인 애도성명을 발표할 수는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 이유로 "한기총이 성명서를 내야 할만큼 그 사람의 죽음에 책임 질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33] 또 "성명서를 발표하면 한기총의 성명서(4월 7일자·청소년보호법 '동성애' 삭제반박 관련)로 인해 자살한 것이라는 인식을 불러일으킬 것이다"며 간접적인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33] 사과 반대 집회를 개최한 목사들과 신도들은 건물 밖에서 불청객을 쫓아내라, 항의방문단 추방을 외치기도 했다.
7월 22일 한국기독청년학생회총연맹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길자연 목사, 한기총) 사무실이 있는 서울 연지동 소재 한국기독교연합회관 앞에서 그의 죽음에 대해 한기총 규탄 2차 집회를 개최했다.[30] 그러나 한기총 본부의 문은 잠겨있었고, 이들의 출입은 거부되었다. 2차 규탄 집회에는 동성애자인권연대, 새민족교회 청년회, 정의평화를위한기독인연대, 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회 등이 동참,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30] 7월 22일 발표한 공동 성명서에서 "한기총이 발표한 성명이 육우당의 죽음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유감조차 표명할 수 없다는 한기총의 입장은 비정상적일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성명에는 "한기총의 성명서가 사회의 아주 통속적인 기준으로 동성애자를 재단하고 편협하게 비난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 현실 앞에서도 유감조차 표명할 수 없다는 한기총을 규탄한다"고 주장했다.[30] 7월 22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은 끝내 이들의 요구를 거절했다.[34] 22일 한기연 등 4개 기독청년단체와 동성애자인권연대는 한기총이 자리한 종로5가 기독교연합회관 앞에서 항의집회를 열고, "동성애를 죄악으로 규정하는" 입장을 고수하며 유감 표명마저 거절한 한기총의 각성을 촉구했다.[34] 이후 육우당의 죽음을 놓고 기독교 단체간 갈등, 논쟁이 계속되었다.
차별 금지법 논란
육우당 사후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학력, 나이, 병역 등 모든 조건에 따른 차별을 방지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입법 발의 논의가 나타났다.[35] 2007년 10월 성적 지향, 학력 등의 이유로 비합리적인 불이익을 방지하는 차별 금지법이 입법예고됐다. 2010년 10월 경기도에서는 전국 최초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됐다.[13] 그의 자살 이후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 문제가 재 공론화되다가 2013년 4월 17일 한국의 국회의원들에 의해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발의되었다. 4월 17일 국회에서 발의된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은 종교, 정치적 의견, 학력 및 병력,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에 반대함으로써 성소수자의 인권을 합법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으나, 몇몇 의원이 '법안 철회'를 밝히면서 난국에 처했다.[36] 일부 단체들과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차별금지법이 동성애를 조장하고 부추긴다는 이유로 반대하였다.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차별금지법 통과되면 청소년들은 동성애로 병들어 자살한다”는 피켓을 들이밀기도 했다.[37] 이에 따라 육우당 추모위원회를 비롯한 인권단체들은 2013년 4월 22일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 청소년 성 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25일에는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기독교계의 반성과 성찰을 요구하는 추모 기도회를 진행했다.[36] 2013년의 육우당 추모기간을 전후하여 성 소수자 인권 운동가들은 차별금지법안에 환영하였으나, 일부 민주당 의원들의 포기로 논란이 벌어졌다.
동성 결혼 합법화 논란
그의 죽음을 계기로 동성애자들의 결혼 합법화 여론과, 동성애자에게도 자녀 입양을 허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등장하였다.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에 비관한 10대 동성애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 성적 소수자의 인권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9] 특히 동성애자의 결혼을 합법화하는 세계적인 추세에 발맞춰 한국에서도 동성애자에게 결혼과 함께 입양으로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제공, 성적 소수자에 대한 근거없는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지적이다.[9] 이후 동성애자의 결혼을 허용하느냐 여부를 놓고 사회적으로 논쟁, 이슈가 되었다. 그러나 동성 결혼에 대한 거부 여론이 우세하였다.
2003년 3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동성애를 차별적으로 명시한 것은 헌법 제10조(행복 추구권), 제11조(평등권), 제21조(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한 행위로 판단, 청소년 보호 위원장에게 청소년 보호법 시행령 제7조 ‘개별 심의 기준’ 중 ‘동성애’를 삭제할 것을 권고했다. 성적 지향의 차이가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9] 2005년 이후 동성애자에 대한 입양 거부는 사라졌지만, 동성애자 간의 결혼은 각 시청, 구청의 민원계나 주민생활계에서 번번히 거부, 반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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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소수자를 칭하는 다른 칭호이다.
- “동성애 차별 괴로웠다” 10代 목매 경향신문 2003.04.29
- [10대가뛰어든세상] 청소년 동성애는 비행이라고? 한겨레 2003.06.15
- 동성애자 결혼·입양 합법화해야 오마이뉴스 2003.04.29
- “신자들이 목사보다 합리적” 한겨레21 201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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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인의 고백 "널 죽인 건 내가 아니었을까" 프레시안 2013.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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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총·한기연 동성애자 죽음 놓고 '이견' 보관됨 2016-05-09 - 웨이백 머신 뉴스엔조이 2003.06.27.
- 한기총, 동성애자 죽음 '애도 불가' 뉴스엔조이 2003.07.10.
- 한기총, 동성애자 죽음에 '애도 표명'마저 거절 보관됨 2014-03-25 - 웨이백 머신 인권하루소식 제2382호, 2003년 7월 23일(수)자, 인권운동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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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동성애자 차별 철폐 문제에 꾸준히 저항했다는 평가가 있다. 그에 의하면 '고인은 아무리 두들겨도 꿈쩍 않던 동성애 억압의 문제에 돌팔매질을 했다.[1]' 한다.
동료들은 H씨에 대해 “시조를 좋아하고 고전도 많이 알던 청년으로 짧은 머리에 늘 밝은 표정을 짓던 귀여운 동생이었다”고 회고하였다.
가톨릭 교회 신자였던 그는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좌절해 끝내 세상을 떠났다. 이후 그는 고통 받는 청소년 성(性) 소수자 인권의 상징이 됐다.[2] 2000년대 중반까지도 그는 이름을 공개할 수 없었다. 2006년 추모제 때에도 그는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지났지만 본명을 드러내지 못했다.[3] 이를 두고 "보통 자신의 목숨까지 내던지며, 이 사회의 모순에 저항했던 이들을 운동진영에서는 열사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는 열사는 고사하고, 죽어서도 자신의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동성애자였다.[3]"라는 평도 있다. 2010년 이후 그에 대한 조명 여론이 나타나, 평가 및 추모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인권사회단체들은 또 "윤 씨의 죽음은 차가운 편견과 멸시, 소외와 차별의 빙벽 속에 갇혀있는 이 땅 모든 동성애자의 죽음을 예고하는 것일 수 있다"면서 동성애자들을 자살이라는 막다른 선택으로 몰아넣고 있는 사회적 편견과 폭력을 비판했다. 나아가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일부 기독교단체들과 언론에 대해서는 "단지 성적 지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야말로 반인권적 폭력이 아니고 무엇이냐"며 되물었다.[4] 인권사회단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윤 씨와 마찬가지로 절망과 외로움 속에 방황하고, 손목을 긋고 줄에 목을 매다는 동성애자들이 더 있을지 모른다"며 "'상식'과 '사회적 통념'을 가장해 동성애자들을 끊임없이 죽음의 낭떠러지로 내모는 부당한 편견과 차별행위는 중단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4]
또,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니라 사회적 편견과 차별 그리고 보수적이고 반인권적인 기독교계에 의해 살해당했다.[5]"는 평도 있다. 또 그의 죽음으로 청소년보호법 동성애 차별조항의 문제점을 널리 알렸고 청소년보호법의 개정을 이끌어 냈다는 평가도 있다.[6] 또 '육우당 동지의 유서는 성소수자들의 사무친 마음을 보여 준다. 그는 ‘골방’ 속에 갇혀 있길 강요받는 성소수자들의 자화상이었다.[7]'는 시각도 있다. 그밖에 '그는 죽음으로 그 자신뿐 아니라 동성애에 관한 한국 사회의 편견과 차별을 ‘커밍아웃’시킨 셈이다[8]'라는 평가도 있다.
비판
한편 '자살은 최선의 선택이 아니다. 자살은 동성애자들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현실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동성애 억압 없는 다른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투쟁이 필요하다.[1]', '동성애 억압에 맞선 투쟁만이 대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살을 선택했다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1]'이라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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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 동성애자 육우당 사망 10주기:숨통을 죄는 억압의 굴레에 맞서 싸우자 레프트21 2013.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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